2018년 10월 성공회대학보 인터뷰


10월, 미디어센터는 ‘더 나은 삶’을 고민한다. 설탕을 바른 독약, 시대를 지배하는 자기계발의 교리는 속삭인다. “주변을 둘러보지 마라. 너에게 집중해라. 꿈을 가져라. 뛰어라!” 그러나 이 경구의 끝에 존재하는 건 성공이 아니다. 잔인한 공허다. 이 주제와 씨름하다가 ‘루트온협동조합’을 떠 올렸다. 이 사람들이라면 삶을 꾸려가는 방식에 대해 무언가 이야기 해줄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짐작했다.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인터뷰를 요청 했다. 나무가 여름을 버리고 가을을 취하던 9월의 끝자락, 루트온 협동조합과 미디어센터가 만났다. 글|정선호 기자    사진|나정어진 기자    취재지원|김태영 수습기자

with 人 within

가방을 벗고 배낭을 메라. 루트온협동조합 메인 슬로건이다. 이 구호를 혀에 올리면 그려지는 이미지는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지평 선 너머까지 펼쳐진 사막, 녹색으로 가득한 초원, 만년설을 뽐내는 산맥의 기세, 햇빛에 부서지는 바람, 바스락거리는 풀잎, 사물을 투명하게 비추는 푸른색 강물, 여행자의 설렘 어린 땀방울, 배낭을 가득 메운 구겨진 지도와 소금기에 전 옷가지 같은 것들. 낯섦과 떠남을 흠모하는 사람의 지난친 상상일까. 궁금했다. 저런 매력적인 구호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어떻게 활동을 꾸려 나가는지 알고 싶었다.

반가워요 루트온!

루트온협동조합 대표자를 맡고 있는 이룩학우와 김연우학우에게 물었다. 도대체 루트온은 뭐하는 곳이냐고. '해외봉사 떠나는 사람들', '해외교류를 하는 단체'같은 답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의 생기 있는 말을 듣고 싶었다. 돌아온 응답은 간결하되, 핵심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여행을 통해 더 나은 지구, 더 평등한 지구, 더 공정한 지구를 꿈꾸는 사람들. 이러한 꿈들을 바탕으로 더 나은 관계,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리는 사람들. 그래서일까. 이룩학우는 루트온을 '한가지로만 정의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행이다. 어쩐지 이야기의 폭을 조금 더 넓일 수 있을 것만 같다. 대안적 해외교류, 루트온의 안쪽으로 들어가자. 이룩 학우에게 루트온의 시작은 '대안에 대한 고민'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방문한 태국 '메솟'의 난민촌은 그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 시절의 가장 행복한 기억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반복되는 대학의 일상 역시 도전을 꿈꾸게 한 계기 중 하나였다. '스스로 친구들과 같이 메솟을 가볼 수 있는거 아닌가' 생각하면서 준비팀을 꾸리고, 여기저기 발품도 팔았다. 그 과정에서 이룩 학우는 우리 대학 해외봉사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 프로그램을 주도하던 신부와도 만나게 됐다. 대안을 향한 열정에 매료된 신부는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의 두상을 도와줬고 그렇게 2012년 '메솟 프로그램'이 본격화 됐다. 2012년. 루트온협동조합 그 긴 항해의 시작이었다.

"기존 해외봉사가 갖는 문제가 많다. 현지인과 관계에 있어 그들의 삶을 깔아뭉개고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한국에서 태어난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같은 차원 낮은 교훈을 전달한다. 사실 저희가 배우러 가는거다. 그리고 연대의 시작이다. 대안적 해외봉사, 이게 시작이었다." - 이룩학우

김연우 학우에게 시작은 '목격'이었다. 김학우는 2012년 메솟 프로그램의 참가자로 이룩학우와 동행했다. 김학우에게 그때의 경험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난민촌에 대해, 난민에 대해 머릿속으로 그려온 그림들이 얼마나 허위에 기방하고 있었던 것인지 알게 됐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머리를 채워온 것들을 지우고 하나씩 새로운 그림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좋은 관계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현지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까 사유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우리한테 서로 좋은 건강한 관계의 방식일까라는 고민을 많이했다. 이룩학우랑 현지 기숙사에서 고민을 많이 나눴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니까 이 친구가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더라.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 - 김연우학우

생각은 힘이 세다

인간의 생각은 힘이 세다. 사람이 모이면 마음과 생각이 모이고 변화의 토대가 마련된다. 루트온이 일하는 방식은 '루트온'답다. 법인 협동조합인 루트온은 지난 몇 년간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현재에는 활동하는 사람들이 조합이 되도록 하는 '직원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 중이다. 최근엔 '서포터'라는 이름을 붙여 여러 사람과 함께 유기적으로 프로젝트를 꾸리기도 한다. 이쯤 되면 궁금한 게 하나 생긴다. 루트온이 선택하는 나라는 어디인지, 또 어떤 기준으로 그 나라를 찾아가는지.

김연우 학누는 "어느 나라나 (루트온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은 똑같다"고 이야기한다. 루트온의 원칙은 확고하다. 이룩학우의 말을 빌리면 "홈스테이나 현지인들과 함께하는 단체 기숙사 생활을 통해 그들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지역, 외국인들이 많이 오지 않는 지역, 현지인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는 지역"들이다. 거칠게 요약하면 지근거리에서 그들의 마음 안으로 다가갈 수 있는 곳이다. 지금까지 루트온은 이 원칙을 지키면서 필리핀, 네팔, 캄보디아, 스리랑카에 이르기까지 여러 국가, 여러 마을에서 해외교류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필리핀의 주제는 '마을 공동체와 행복'이다. 말은 어렵지만 가서 재밌게 살아보자는 거다. 이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한국에서 못 느끼는 따뜻함이 있구나. 신부님이 처음 기획한 프로그램이고 10년이 넘었다. 굉장히 작은 소수민족 공동체다. 기존 해외봉사프로그램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 이룩학우

"캄보디아는 조금 더 현지 중심기관과 하고 싶어서 기존에 (현지에서)함께하던 파트너와 이별하고 새 파트너를 찾았다. 빈곤한 나라다. 내전을 거치기도 했다. 그런 빈곤을 한국 참가자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그들의 주체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고민하는 프로그램이다. 필리핀과는 성격이 다르다." - 김연우학우

이 행성 곳곳에, 루트온

루트온은 2학기 들어 총 세 차례 네팔 해외교류 프로젝트 설명회를 진행했다. 12월 말에 출국해 1월 중순에 귀국하는 프로그램. 10~15명이 함께하는 네팔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물어봤다. 어쩌면 루트온을 궁금해 하는 학우들이 해외교류를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도화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참가자들은 네팔 산골에 위치한 '아루가르까'라는 마을에서 활동하게 된다. 그곳에서 2인 혹은 3인 1가정으로 홈스테이를 하며 머문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교육하기도 하고, 농촌활동도 한다. 인문학적 시간을 가지면서 타인의 삶과 내 삶을 나란히 두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도 길게 갖는다. 연대 그리고 공감의 확장이다.

이룩 학우는 "네팔은 우리와 삶의 형태가 많이 다르다"고 이야기하면서, 네팔이라는 공간이 갖는 자연과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이뿐 아니다. 조를 짜서 본인들이 원하는 여행지를 하루 이틀 마음껏 다니는 자유여행시간도 갖고, 히말라야 트레킹도 일주일 동안 다녀온다. 참가비도 중요하다. 올해 기준으로 성공회대 네팔프로그램 280만원이 소요된다. 여기에 학교 측으로부터 50~80만원의 장학금이 지급된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일주일정도 다녀온다. 'ABC'라는, 소위 말하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이동한 다음 트레킹이 끝나면 포카라라는 동네에서 또다시 휴식을 갖고 귀국한다. 혼자면 두려울 수 있는데 같이 한다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이하니까." - 이룩학우

관계 그리고 사람

2012년에 시작했으니 어느덧 루트온 활동만 7년. 어느덧 '프로'의 영역에 접어들었지만 두 학우는 한결같다. 두 학우에게 루트온은 단순한 '해외봉사'가 아니다. 두 학우는 타인의 삶에 들어가 타인의 마음에 관여하고, 타인의 심장을 움직이는 일이 얼마나 무겁고 신중한 일인지 예민한 감각으로 인식하고, 공감한다. 김연우 학우는 "느려도 같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짧은 문장 안에 루트온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담겨있다.

그래서일까. 루트온프로젝트에 참가하면 일종의 휴유증, '통증'이 깊어진다. 두 학우가 우스갯소리로 "(다녀온 사람들) 사이가 너무 돈독해서 문제"라고 말할 정도다. 이룩 학우는 루트온 프로젝트가 "함께하기 때문에 일반 해외봉사와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현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교정하거나 바꾸려는 열정을 내려놓고, 그들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학우는 결코 속단하지 않는다. 진중하고 신중한 시선으로 타인과 나의 관계를 조망한다. 현지인들은 입을 모아 '루트온은 다르다'고 말한다. 뭉클한 말이다.

두 학우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각자의 '생존'을 걱정하기에 바쁜 시대. 해외교류는 나에게, 사회에게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질문을 듣고 먹먹했다. 나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같이 생존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한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필리핀 사람들의, 네팔 사람들의 생존을 함께 하는 게 내가 보는 해외교류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스스로 치유가 된다." - 김연우학우

"재밌게 연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루트온이 필요하다. 루트온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런데 이제는 그런 존재 하나 하나들의 힘을 모아낼 수 있는 역할을 우리가 할 수 있지 않을까." - 이룩학우

두 학우를 만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학관(나눔관) 탁구장 옆엔 루트온사무실이 있고, 카카오톡 오픈 채팅으로도 두 사람과 언제든 대화하거나 만남을 위한 약속을 잡을 수 있다. 어쩌면 루트온이 '당신 청춘의 전화점'이 될 수 있다고 이룩학우와 김연우학우는 입을 모았다.

창백한 푸른점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호모 사피엔스의 언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지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

"다시 이 빛나는 점을 보라. 그것은 바로 여기, 우리 집, 우리 자신인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아는 사람, 소문으로 들었던 사람, 그 모든 사람은 그 위에 있거나 또는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 숭상되는 수천의 종교, 이데올로기, 경제이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민, 서로 사랑하는 남녀, 어머니와 아버지, 앞날이 촉망되는 아이들, 발명가와 개척자, 윤리 도덕의 교사들, 부패한 정치가들, 슈퍼스타, 초인적 지도자, 성자와 죄인 등 인류의 역사에서 그 모든 것의 총합이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작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 - 『창백한 푸른 점』

여기에서 '이 빛나는 점'은 지구다. 우리는 이 광할하고 외로운 우주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함께하고 있다. 당신과 내가 이 작은 행성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으로 태어났다면 '관계맺음'은 끝내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나는 확신한다. 더 나은 관계, 더 나은 삶, 더 나은 지구를 고민한다고? 그럼 당신에게 루트온을 권한다. 루트온은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를 위한 훌륭한 방정식이다.

* 본 글의 저작권은 성공회대학교 미디어센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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